설교/칼럼

2월 19일 주일설교
본문: 왕하 2:1-12
제목: 제자입니까
우리가 읽은 말씀은 엘리야와 엘리사의 선지자 계승에 관한 글인데, 이 사건의 배경을 먼저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의 25절에 걸쳐 소개한 엘리야와 엘리사의 승계 이야기는, 바로 전인 왕하 1:17-18 단 두절에 기록된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하시야와 여호람의 왕위계승 다음에 등장하여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고 패역한 왕위의 계승보다 말씀을 순종하고 전하는 삶을 살았던 선지자의 계승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시대적인 배경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하나였던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에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바알 우상숭배가 극에 달하고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이 득세하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영적 상황이 이쯤 되면 영적 지도자인 엘리야가 문책을 당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가 선지자들 가운데 특별한 은혜를 입은 위대한 선지자였다는 사실이 오늘 본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는 그가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였는가로 얼마나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가로 평가되는 것이지, 그가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고 그가 얼마나 큰 인기를 누렸는지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9-10절에 말씀하십니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열왕기하 2장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1절). 엘리야는 에녹 외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선지자의 생애를 마무리하는 사건을 다루는 부분에서 엘리야와 함께 조명을 받고 있는 사람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입니다. 엘리야의 인생의 마지막 사건이며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 전면에 등장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엘리야의 다음 세대 사역을 이끌어갈 후계자 엘리사에게 초점을 맞추어 읽어 가면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2, 4, 6절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대화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머물라. 나는 가리라”하면, 엘리사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지요. 왜 그랬을까? 그러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떠나라고 한 엘리야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고, 일종의 테스트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 번이나 같은 시험을 했다면 제자로서의 자질 중에 무언가 아주 중요한 자질을 보기 위한 테스트였음에 분명한데, 그것이 바로 인내력과 충성심입니다. ‘당신은 정말 제자입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글을 읽어보면 엘리야가 이제 나를 떠나라고 말하면서 길갈에서 벧엘로, 그리고 벧엘에서 다시 여리고 근처 요단강가로 이리 저리 엘리사를 후드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잘 붙어있는지 시험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엘리사의 충성심과 인내력은 대단합니다. 세번이나 이제 나를 떠나라고 해도 전혀 요동하지 않고, 똑 같이 세번이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변함없는 충성심과 인내를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빵집 배달원이 배달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다가 빵을 끝까지 배달하고 갔다는 얘기를 한 성도에게 전해 듣고 이 사람은 분명 주인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이 사람이 종업원이라고 하면 이 사람에게 빵집을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엘리야의 뒤를 이을 훌륭한 제자로서의 엘리사의 자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은 3절과 5절에 두 번이나 등장하는 엘리사와 선지자의 제자들과의 대화입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 아시나이까?” 엘리사의 대답은 두 번 모두 같습니다.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나님이 엘리야를 엘리사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 선지자의 제자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그 이유가 나와있지는 않습니다만, 본문에서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것은 엘리사와 선지자들의 제자들이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이제 곧 데려가실 꺼야라는 선지자들의 말은 준비하라는 말이지요. 가는 사람도 준비해야 하지만, 보내는 사람도 준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엘리사의 마음에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위대한 선지자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했더니 수년 동안 비도 오지 않았다가 그가 다시 기도했더니 비가 내리고, 사르밧 여인의 기름통과 밀가루 통에 기름과 가루가 없어지지 않게도 하고, 죽은 아이도 살려내고, 갈멜산에서는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정말 이루 해야릴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했던 사람이 이제 그 인생을 마감하려고 하는 순간, 그 모든 사역의 짐이 엘리사에게로 넘겨지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엘리야 때문에 이스라엘이 여기까지 왔는데, 이젠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마치 모세를 보내고 이스라엘을 맡은 여호수아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엘리사가 동요하지 않고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합니다. “잠잠하라!” 도데체 무엇이 엘리사로 하여금 이러한 확신과 평안을 갖게 하였을까요?
그 이유가 본문에 소개돼 있습니다. 엘리사가 변함없는 충성을 보이자 엘리야가 “이제는 됐다”하면서 엘리사에게 소원을 물어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꾼을 부르실 때 이렇게 인내를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도 오랜 시험 끝에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여기서도 엘리사에게 이제야 네가 순종하는지 알겠다고 말씀합니다. 끝까지 인내합시다. 우리 하나님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분입니다.
결국 엘리야가 엘리사에서 묻습니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우리가 읽은 개역개정판에는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고 번역돼 있고 개역한글판에는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라고 번역돼 있습니다.
부도 명예도 아니고 영감을 달라! 엘리사가 엘리야를 쫓았던 이유가 드러납니다. 엘리야가 두려움없이 잠잠하게 기다렸던 이유가 여기에 드러납니다. 엘리야의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 엘리사에게 필요했던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갑절의 영감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이지요.
그런데 갑절의 영감이란 엘리야의 영감의 두 배를 달라는 요청으로도 이해될 수 있고, 다른 선지자들 보다 두 배의 영감이 있게 해 달라는 요청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모두 교만한 소원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거룩한 소망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소망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우리 모두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집고 넘어가야 하는데 이 소원을 묻기 전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함께 요단을 건넙니다. 겉옷으로 물을 가르고 지나가지요. 어떤 사람은 그 겉옷에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참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물을 가른 것이 옷도 아니요 엘리사도 아니요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옷도 특별할 것이 없고 엘리야도 우리가 똑 같은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물을 가르는 사건이 세 번 등장하지요. 한 번은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위로 내밀 때 물이 갈라졌고, 한 번은 여호수아가 언약궤를 앞세워서 나아갈 때 물이 갈라졌고, 이 번에는 엘리야가 겉옷을 감아 쳐서 물이 갈라지게 했습니다. 방법은 달라도 역사는 같지요. 왠지 아십니까?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사실은 엘리야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모두 하나님께서 물이 갈라지게 했을 때 지나갈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물 위로 걸어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라주셔야 건너지만 예수님 그 위에 계신 분.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야 갈라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야 험한 바다 위로 지나가게 됩니다. 문제와 시험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그 위로 지나간다는 말이지요. 엘리사는 이것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가 따르고 의지했던 엘리야가 떠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지요.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예배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 믿으시기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지금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하면 어떤 소원을 빌겠습니까?
중고등학생들 기도제목이 아래에 있습니다. 그 중 으뜸이 남자는 185 여자는 165입니다. 우리 아들에게 물어보면 스마트폰 . . . 좀 더 가치있는 것을 구하면 좋으련만…
유럽의 전래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음씨가 아주 착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난하게 살고 있는 산골짜기 통나무집에 어느 날 숲속의 요정이 찾아왔다.
갑자기 집안이 환해지더니 요정이 나타나 어쩔 줄 몰라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요정은 "이제부터 세 가지 소원을 말하세요. 무엇이든지 그대로 될 거예요."하고는 사라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난로가에 앉아 소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큰 부자가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그러나 막상 소원을 말하려고 하니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왜 오래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할머니가 한마디 했다.
"이럴 땐 소세지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먹어가면서 생각할 텐데…."
말을 채 맺기도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 먹음직한 소세지가 하나 놓여졌다.
 
어이없게 한 가지의 소원이 쓰여졌다는 사실에 할아버지는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이 할망구가 미쳤나. 그 소세지 꼴도 보기 싫어! 할망구 코에나 붙어 버려라!"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랬더니, 소세지가 정말 할머니의 코에 길다랗게 붙어 버렸다.
 정작 그 소원(?)이 이루어지자, 할아버지는 당황했다. 이제는 한 가지 소원밖에 남지 않게 되었고, 무엇을 구하여야 할지 고심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입맛을 다시며 마지막 한 가지 소원을 말했다.
"소세지야, 할망구 코에서 떨어져라!" –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말 필요한 것은 정작 하나도 구하지 못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구하는데에만 우리의 기도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엘리사에게 엘리야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대답하는데 이것은 안 되겠는데 좀 힘든데가 아니라 참 놀라운 요구를 하는구나 보통은 재물을 달라 명예를 달라 하는데 너는 남들이 구하기 어려운 성령을 구하는구나하는 거지요. 마치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감탄하시듯 말입니다. 당신은 제자입니까? 엘리사처럼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구합시다. 예수님의 제자답게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간구 합시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보면 그 일이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끝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스승되신 예수님이 내 소원을 이루시고 만족하게 하실 수 있는 제자라면 끝까지 그 분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참고 바라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마치 제자들이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듯, 마침내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는 장면을 보게되고,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듯 성령이 엘리사에게 입합니다. 성령을 주시는 문은 오직 한 부 하나님이십니다. 제자라면 그분을 바라고 기대합시다.
우리 모두 엘리사와 같은 거룩한 소원을 구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한 번 요청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주실 줄 알고 주실 때 까지 간구하는 제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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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이번주도 듣지않고 말씀을 봅니다.
제게도 성령충만을 부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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